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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고 쓰고

GV빌런 고태경

GV빌런 고태경. 정대건 장편소설. 은행나무 출판사

 

우선 영화 잘 봤습니다. 그런데...

 

 

오랜만에 장편소설 한편을 보았다.

늦은밤 지방 국도를 운전하며 편안한 라디오 체널을 찾다가 우연히 EBS 북까페 방송을 듣고 내용이 참 좋아 팟빵을 통해 다시듣기 하다가 이책을 알게 되었다.

 

GV(guest visit) 그러니까 영화 관람후 관계자들이 관객과의 만남을 하는것을 말하는데 주로 감독이 영화에 대해 관객과 소통하는 자리를 말하는듯 하다. 어려운 영화일수록 질문이 선듯 안나오는 자리이기도 하고, 외국감독의 방한으로 이루어지는 자리에 통역이 같이 배석하기도 하며 상황에 따라 주연배우가 함께 나오기도 한다.

 

빌런은 villain으로 영화에서 악당을 뜻하는 것이나 요즘은 좀 괴기스러운 행동을 하는 사람도 빌런이라고 넓게 쓰이기도 하는것 같다. 그래서 GV빌런이라하면 영화상영후 관객과 영화 관계자의 만남의 자리에서 악당같은 행위를 하는 사람이라 할수 있다. 그리고 고태경은 사람 이름이다.

 

바로 감이 오는데 GV빌런 고태경은 GV장에서 영화관계인을 곤욕스럽게 하는 좀 흔치않은 케릭터라는것을 알려주는 제목이다. 참 재미있다. 영화를 좋아해서 집에서 영화를 보지만 극장은 잘 안찾게 되는 시점에서 나온 영화관을 주제로한 소설이라니! 설정과 시점이 참 절묘하다 싶은 책이다. 2020년 4월 20일 1판 1쇄된 소설이고 2020년 한경신춘문예 당선작이어서 일까? 문장 흡입력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줄거리를 이야기 하자면 졸업작으로 초저예산 영화 감독 이후 영화판에서 불러주지 않는 나(조혜나)는 작품 만든뒤 남은 빚과 무직자로 생활고에 힘들어 하며 살고있다. 얼마나 힘든지 커피두잔값 후원도 끊어야 하는 상황이고(이 장면은 직접 읽어보시길 작가가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첫 페이지부터 작품속으로 독자를 확 끌어드리는게 크게 느껴진다), 가지고 있던 영화관련 서적도 중고로 팔며 책은 시작된다. 한교연(한국영화교육센터)에서 영화를 같이 배우던 동기인 배우 박종현이 독립영화극장에서 배우전을 한다며 연락이와 거마비정도 준다는 이야기에 출연해 주기로 승낙하여 극장으로 향하는데... 이제 이 책의 핵심등장인물 4명중 3명이 한자리에 만나게 된다. 나와 옛 연인인 배우 박종현, 그리고 우리의 고태경. 고태경은 GV자리에서 빌런짓을 하며 나를 힘들게 만들고 나는 욕설로 응대를 하며 자리를 망치고 이것은 바로 유툽에 올라와 하루밤 사이에 내 영화 관객수의 세배가 넘는 삼천을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였다.

그 후 어느 외국영화 국내촬영분 도로통제 아르바이트 장에서 만난 또다른 핵심인물 승우와 GV빌런에 대해 이야기 하던 도중 승우로 부터 차기작을 이 빌런의 이야기를 다큐로 만들어 볼것을 권유받고 나는 고태경에게 관심을 갖는다. 고태경이 자신을 영화판으로 이끈 초록사과 조연출 출신이란것을 안 나는 더더욱 호기심이 생겨 고태경에 대한 다큐를 만들어 왜 그가 GV에 나타나 감독이 싫어할만한 질문을 하는지 알아보기로 하고 그를 희화하며 자기의 제기와 복수를 하려고 하는데...

 

나(조혜나)라는 인물은 힘든 생활고와 저조한 대뷔작 성적에 자존감은 떨어진 상태이고 그런 가운데 엉뚱한 행동을 해 웃음을 유발하기도 한다. 고태경이라는 인물을 알아가며 정리되지 않은 나의 과거, 고태경의 과거가 대비되며 소설의 이야기를 풍부하게 해주고 있다. 유명영화 조감독 출신이지만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고태경이라는 한 인물을 알아가며 다소 삐뚤어진 사람이 아닌가 선입감을 갖게 될수 있지만 그것을 배제하고 한 사람을 온전하게 이해해 나가는것을 작가가 한문장 한문장 정성스럽게 쓴 글을 통해 너무 크게 느껴졌고, 독자를 몰입시키는 이야기 구조와 갈등, 해소 그리고 간접적으로 나에게 주는 희망이 소설을 손 놓이 아쉬워 밤잠 못자가며 읽은 책이다.

 

작가 정대건씨가 작가의 말에서 뜻때로 풀리지 않아 힘든시기를 거쳤다고 말해서 일까? 이 책은 우리에게 화려한 스크린뒤 알려지지 않은 또는 그냥 잊혀진 많은 시네마 키즈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판에서 보여주는 다양한 인간상과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자기의 꿈을 위해 나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따뜻한 메세지를 전해준다.

'GV빌런 고태경' 다큐 상영 후 GV자리에서 작가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을 한다.

 

"좀길게 말해도 될는지요."

곧이어 마이크를 넘겨받은 고태경이 운을 떼었다.

"누군가 오랫동안 무언가를 추구하면서도 이루지 못하면 사람들은 그것을 비웃습니다. 자기 자신도 자신을 비웃거나 미워하죠. 여러분이 자기 자신에게 그런 대접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냉소와 조롱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값싼 것이니까요. 저는 아직 생각만 해도 가슴 뛰는 꿈과 열망이 있습니다. 바로 이곳에서 제 영화를 상영하는 겁니다."

마치 신경정신과 의사가 누군가를 위로해주는듯한 문장이다. 작가는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기에 이런 문장을 써 내려 갈수 있었던것일까.

작가 또한 한국영화아카데미 영화연출을 졸업하고 세편의 영화 연출을 한 사람으로 극중 주인공 조혜나를 여성으로 만들어 자신과의 거리감을 두어 자칫하면 무거워질수도 있는 소설을 객관적으로 바라볼수 있게 해주었고 여성의 심리를 잘 표현하면서도 자칫 엇나갈수도 있는 이야기를 깔끔하게 마무리하는 웰 메이드 소설이다. 오죽하면 심사위원이 작가와 통화하기 전에 이 소설 작가를 여성일것이라고 생각했을까...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한국영화 100주년에 나의 방식으로 영화와 극장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이런 작가의 말 처럼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또는 힘들지만 같은 시대를 우리가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고 말하고 싶은 사람들이, 지나간 첫사랑을 따뜻한 감정으로 떠올리고 싶은 사람들이, 헤어진 연인과 감정이 정리되지 않은 사람들에게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